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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이야기/한국-제주도

[제주도 여행기-8(3일차)]김영갑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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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photo.tistory.com/193

위 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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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김영갑 갤러리.

이 곳에 온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사실 첫 방문 때에는 김영갑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이, 그저 좋다는 말만 듣고 막연하게 찾았던 곳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첫 방문 때의 감동과

그 때의 가슴 떨림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자, 그렇게 방문하였다.

첫 번째 방문 때에도, 두 번째 방문에도, 나는 거의 마지막 손님으로 이 곳에 발을 들였다.


정원을 가로질러 김영갑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기까지, 햇살이 기분좋게 정원 위로 내려앉았다.

비록 추위에 오래도록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눈 덮힌 두모악 갤러리 정원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매표소에서 3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티켓 대신에 김영갑 작가의 사진이 멋지게 담긴 엽서를 준다.

입구를 지나 갤러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왼편으로 김영갑 작가가 생전에 쓰던 방이 원래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반 위에 놓인 수 많은 필름 카메라에서,

책상 위의 많은 책들의 빛바램 속에서 세월의 흐름을 읽었다.

햇살마저 느리게 흘러갈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의 방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것도 무척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힘겨움은 조용히 치워둔,

철 모르는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두 개의 입구.

1관과 2관으로 나뉘어진 갤러리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김영갑 작가의 사진들을 전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두 번의 방문 모두 같은 사진들을 보게 되었었다.

다음 방문 때에는 다른 주제의 사진들도 볼 수 있을런지...?


1관은 "두모악관"이라고 되어 있었으며,

김영갑 작가의 생전 모습이 담긴 인터뷰 영상과 그가 담긴 사진들이 있는 영상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는

갤러리가 있었다.


사진들은 마라도의 풍경을 찍은 것들로, 중간 중간 인심을 잃어가는 마라도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작가의 글도 함께 있었다.

마라도의 웅장한 자연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따스함 같은 것도 함께 담아내려 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조금 지나친 비약인걸까?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에서 루게릭 병에 걸려 굳어진 혀로 힘겹게 발음하는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저려왔다.


2관인 "하날오름관"에서는 이어도의 풍경이 펼쳐졌다.

바람을 담고자 노력했던, 바람처럼 살다간 사내의 자화상 같은 작품들.


자신이 힘들 때,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홀로 찾아가 쉬고 왔다는 그 곳의 풍경.

어쩌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그의 영혼이 그곳에서 세속의 근심도 모두 내려놓고 쉬고 있지는 않을런지.


처음 방문했을 때와 똑같은 창문을 다시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여름에는 참 예쁘게 핀 노란 꽃이 반갑게 웃고 있었는데...하고 생각하다가,

평생 용눈이 오름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김영갑 작가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 짊어진 내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져서.

대상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그것 하나 오늘 배워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더랬다.



어쩌다보니, 갤러리를 나서는 마지막 손님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정문이 닫혀 정원을 빙글 돌아 후문으로 나섰다.

다음에 다시 올 때에는, 좀 더 여유있게 와서 이 정원도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고 다짐했다.


후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하늘이 어찌나 파랗고 아름다운지.

사진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다는 김영갑 사진작가.

제주도 오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이십대 때 부터 평생을 제주도 사진만을 찍으며 살다 간,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기술이 아닌 가슴으로 사진을 찍었던 예술가 김영갑.


차에 오르고 나서도 한참을 시동도 걸지 못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유롭고자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내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가를 더 깨닫고 가는 것만 같았다.

예술에 혼을 불사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한과 슬픔도 함께 느껴졌다.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인생을 힘껏 살다 간 고인의 혼이 얼마나 순수했을지,

부러움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말뿐인 인생이 되어있는건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멍한 느낌에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꼬르륵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저녁 6시가 넘어있었다.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들었다.

저녁을 먹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고 싶다 생각했다.

미리 봐두었던 "오조 해녀의 집"에서 뜨끈한 전복죽으로 속을 달래자, 하며

차에 시동을 걸고,

성산 일출봉쪽을 향해 달려갔다.

( http://i-photo.tistory.com/entry/제주도-맛집오조-해녀의-집 오조 해녀의 집 리뷰입니다.) 


저녁 식사를 빠르게 마친 후,

숙소에 들어가 9시가 조금 넘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9시가 넘어있었다.

무엇에 그렇게 지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온 몸에 후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왔고

그 열기에 취한 듯이 잠에 들었던 것 밖에 기억에 없었다.

그렇게 3일째 제주도 여행은 막을 내렸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또 감동도 함께 남았던 3일차.

하지만 다시 여행을 한다면, 또 이 날 처럼 하고 싶다.

여행은 그런것인가보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 아쉬움이 또 아름다운,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래서 아름다운.

그런 여행.

그런 인생.




2011년 1월 17일

Photo by Tamuz




Sigma DP2s

@제주도, 김영갑 갤러리(두모악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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