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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이야기/한국-제주도

[제주도 여행기-10(4일차)]쇠소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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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photo.tistory.com/205

위 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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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쇠소깍에 도착했다.

에메랄드빛 물이 뻗어나와 바다로 이어진다는 쇠소깍.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싶어 달리고 달려 온 곳.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밤하늘처럼 까맣게 고운 모래사장이었다.


아름다운 그 해변의 모습에 눈이 즐거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아직 대낮인데도 마치 초저녁같이 느껴질 정도로 짙게 낀 구름.

그래도 그 해변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스쳐왔던 시간들,

내가 떠앉고 있는 많은 문제들

그것들이 모두

파도에, 바람에 쓸려 갈 것 처럼

그렇게 천천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무거운 것들이 점점 가벼워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룬 순간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무렵,

해변에서부터 쇠소깍을 거슬러가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았다.

구비구비 구부러진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 산책로의 입구에 있는 것이 "투명카약"으로, 무척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투명한 카약 아래로 쇠소깍의 에메랄드빛 물을 즐기는 것 같았고,

저 밑에서 쇠소깍을 따라 카약을 저으며

마치 그 옛날 중국의 소동파가 나룻배를 타고 적벽을 따라 흐르듯

그 경관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일행이 있었다면 나도 한 번 타보고 싶다 생각했다.


쇠소깍의 끝에 도달한 후, 다시 쇠소깍의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바람이 있었고, 파도가 있었고,

서로 다른 것들이 한데 뭉쳐 어우러지는 고요한 축제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끊임없는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저렇게 바다로 흘러 이 물줄기는 바다가 되고, 어딘가에서 수증기가 되고,

또 어딘가에서 구름이 되어 비로 내리면

나도 네녀석을 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거냐, 하고 물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예측할 수 없고,

그 만남과 헤어짐의 형태도 예측할 수 없는 거라고

이 쇠소깍의 한 풍경이 가르쳐주는 듯 했다.


쇠소깍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볼 만큼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 자리를 떠나기가 싫었다.

그래서 해변가에 걸터앉아버렸다.

다시 하염없이 파도치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하늘 한 켠에 붉게 물든 빛이 은은하였다.

그 바람과 파도와 빛을 받으며

전지훈련을 온 한 무리의 운동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아마도 고등학생쯤 되는 듯, 제법 어린 티를 벗고 있지만

결국 아직 아이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구호소리가 제법 구수했다.


정말 너무 오래있었다.

바지를 툭 툭 털고 일어나 주차시켜놓았던 차에 탔다.

시동을 걸기 전, 잠깐 눈을 감으니

쇠소깍의 고요한 파도와

엉덩이에 와 닿던 부드러운 검은 모래와

뺨을 스치던 겨울바람이 느껴졌다.

이 풍경과 느낌은 제법 오랫동안 남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출발 해야지.

정말 떠나기 싫은 쇠소깍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용머리 해안으로 향했다.


(http://i-photo.tistory.com/entry/제주도-여행기-114일차용머리-해안 에서 이어집니다)






2011년 1월 18일

Photo by Tamuz




Nikon D300s, 17-55mm DX 2.8

Sigma DP2s

@제주도, 쇠소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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