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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이야기/한국-제주도

[제주도 여행기-12(4일차)]오설록/모슬포 항구/바이킹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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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photo.tistory.com/207

위 링크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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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5시가 넘어 겨우 오설록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고,

겨울의 거친 손톱이 지나간 오설록 차밭은 듬성 듬성 그 초록의 생기가 머리의 땜빵처럼 빠져 있었다.

여름의 그 타오르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차밭은 그 매력이 덜했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의 순환고리에 따른 운명이다.

오늘은 차밭의 낭만을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니었다.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오설록 내의 탁자에 홀로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며

지나간 바람의 흔적을 다시 퍼즐처럼 맞출 요량이었다.

폐관시간이 다가옴에도 북적이는 오설록 뮤지엄에서

나는 혼자서는 먹기 버거울 거란 생각도 없이 녹차 아이스크림과 삼다연을 주문했다.


쿠키와 함께 나온 삼다연, 보기만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녹차 아이스크림.

왜였는지, 가슴에서 불이 났다.

추억을 먹어치우듯이, 헐레벌떡 아이스크림을 입에 우겨넣었다.

여름에 느꼈던 그 시원하면서 짙은 녹차의 향이 느껴졌다.

속에서 불이 났다. 또 다시 아이스크림을 떠 넣었다.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꽃이 다 식을 때 까지 차디 찬 녹차 아이스크림을 혀 위에 놓고, 녹여 삼켰다.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이 없어졌다.


그리고 삼다연.

신기한 차였다.

첫 잔은 고소하면서 잎의 냄새가 강했다.

둘째 잔은 단맛이 났고,

셋째 잔에서는 향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끝맛은 첫 잔의 구수함을 불렀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이유모를 불길은 그 차갑던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따듯한 녹차의 그 순환하는 끝맛이 달래주었다.

이미 구석 구석을 잘 아는 오설록을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무척 아름답게 잘 인테리어된 곳이지만,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차라리 폐관시간까지 천천히 차의 향을 느끼며 마지막 힘을 다하는,

나뭇가지 사이로 필사적으로 타오르는 태양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여섯시가 지나, 모슬포 항으로 떠났다.

제주도 서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항구에서 제주도의 일몰을 담고자 계획했던 장소였다.


모슬포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기 20분 전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는 위치는 커녕 어느쪽이 제대로된 서쪽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구름이 껴 있었다.

햇빛의 노란 빛깔은 하늘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날씨가 좋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큰 테마 중 하나가 일출과 일몰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는데,

안타까움에 할 말을 잃었던 그 순간의 감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일몰을 담을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항구를 걸었다.

많은 배들이 부둣가에 머리를 대고 새벽까지의 깊은 휴식을 준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파도에 쓸리고 햇빛에 바래진 배들의 상처에서 그들의 피로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항구를 하릴 없이 서성이고 있으려니, 멀리서 배 한 척이 들어온다.

오늘의 마지막 배다.


마지막 배가 들어오고, 건진 것들을 뱃사람들이 배에서 내린다.

트럭이 한 대 와서 방어 몇 마리를 건내받고 빠르게 항구를 빠져나갔다.

방어가 풍년이라더니, 내 몸통만한 대방어가 저 조그마한 배에서 끝없이도 나왔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으니, 한 어부가 와서는

"저런거 찍어봤자 돈 안돼~ 찍으려면 제대로된걸 찍어야지." 하신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뒤적이시다 "옳지, 여깄네." 하시며 내게 사진 한 장을 자랑스레 내민다.

"이 놈이 다금바리란 건데, 이거 한 마리 팔아서 3천만원 받았어, 3천만원."

어지간히 자랑스러우셨던겐지, 어깨가 다 들썩이고 표정이 태양처럼 환하다.

"찍으려면 이런 걸 찍어야지. 내일 새벽에 다시 나와봐. 그래야 이런걸 찍어."

하시더니, 농담 몇 마디가 오간 후 내일 새벽에 나갈 배에 태워주신단다. 사진 맘 껏 찍으라고.

감사하지만 내일 서울로 돌아가야해서 못탈 것 같다며, 다음에 제주도에 오거든 꼭 다시 들르겠단 말로 어르신과 작별을 고했다.

만약 다음날 서울로 돌아가야하는 일정만 아니었더라면, 난 분명히 다른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라도

저 배를 탔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어부들과 친해져 말을 농을 주고 받다가,

저녁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감을 깨달았다.

이미 일몰 시간은 멀찌감치 지나가있었고,

주변은 어둑사니 컴컴한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바이킹 바베큐 라는 고기집으로 향했다.

제주도에 혼자 놀러온 사람들이 모여

제주도 흑돼지를 함께 먹자고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느영나영"이라는 제주도 카페에서 어떻게 인연이 되어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두 분이

아주 조금 약속시간을 넘겨 도착했고,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한 분은 성남에서 근무중인 공군 장교였고, 또 다른 한 분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셨다.

교육 이야기, 군대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돼지고기와 새우, 그리고 전복을 먹었다.


음식 자체의 맛도 좋았지만,

얼마만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저녁이었는지...

홀로 하는 여행의 끝에,

여행이기에 할 수 있는 처음 만난 사람과의 저녁식사는 정말 신선한 맛으로 다가왔다.

이런 의외성,

이런 우연성이 여행을 즐겁게 해주고, 또 의미있게 해준다.

늘, 인생이 그렇듯이.



저녁 10시가 다 되어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로의 숙소로 떠났고,

내가 숙소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피로가 밀려왔다.

씻지도 못한 채 방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의 여행은 끝을 맺어야 할 때가 되어있었다.

(http://i-photo.tistory.com/entry/제주도-여행기-13 에서 이어집니다)





2011년 1월 18일

Photo by Tamuz





Nikon D300s, 17-55mm DX 2.8

Sigma DP2s

@제주도 오설록 / 모슬포항구 / 바이킹 바베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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