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된 여행이야기/유럽-체코

[유럽 여행]체코-프라하의 거리

반응형

쿠셋에서 하룻밤새 묵은 찌뿌둥한 몸으로 프라하의 거리에 서자 눈이 내렸다.

동유럽의 이미지와 흩날리는 굵은 눈발이 묘하게 잘어울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큼지막한 털모자를 눈 바로 위까지 푹 덮어쓴 채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독일에서 만나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과 거리.

이곳은 뭔가 더 절박하고 어두웠다.

단순히 이미지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신문 가판대에서,

서유럽과는 뭔가가 달랐다. 이 분위기는 어딘가에서 느껴본 적이 있었다. 어디였더라?

그래.

서울.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 세상에 '체코'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과 밀란쿤데라 라는 걸출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던 나는, 사실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체코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의 이미지 속의 체코와 프라하는 어딘가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가슴이 아픈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프라하에서 그런 분위기를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되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무척이나 강대한 국가 중 하나였다.

프라하의 봄을 실현하기 전까지만해도 서유럽 만큼이나 잘 나가던 공업국가 중 하나였고,

드보르작과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도 여럿 배출한 문화 선진국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현재에도 체코의 국립 오케스트라단은 세계에서 손꼽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필하모닉 중 하나로 손꼽는다.


체코는 수공예품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도자기 인형이라든지, 조각상이라든지, 아니면 꼭두각시 인형이라든지...

거리의 상점들 틈에서 나무로 만든 수공예 인형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체코의 물가는 보기와 다르게 제법 높았다.

관광 명소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자,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나 관광객들을 상대로한 바가지 물가와 소매치기, 그리고 매춘업도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같은 체코인들 사이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순진한 공산주의의 품안에서 냉혹한 현실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사는 그 곳의 북쪽의 미래가 딱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될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되어가고 있다. 더 심각하고 더 우울한 형태로. 정말이지 대단한 홍역이다 싶다)

아무튼.


세상은 변화하고, 사람은 거기에 발맞춰 적응하며 살아간다.

소련의 철조망 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던 몸부림도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틀 안에서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몸부림도

그리고 민주화와 자본주의화를 함께 홍역처럼 치르는 현재의 몸부림도

모두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게 역사고,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란 거겠지, 싶었다.

이래저래 우울함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낭만의 도시, 프라하.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한 통의 흑백필름의 절반 이상을

이 곳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던 곳.





2008년 1월 5일

Photo by Tamuz






Nikon D50, 18-35mm 3.5-4.5

Minolta Dynax 7xi, 28-80 4-5.6

@체코, 프라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