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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이야기/유럽-스위스

[유럽 여행]스위스-루체른 호수의 어느 이름모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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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에 도착하고, 인터라켄으로 가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친구와 나는 루체른 호수를 일주하는 증기선에 몸을 실었다.


마치 바닷가를 접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의 장대한 호수를 가로지르며 배를 탄 지 약 30분.

여전히 지평선 너머에는 물과 알프스산 밖에 보이지 않고,

이대로 가면 우리는 빼도박도 못하고 반대편 호숫가까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두 시간 후에 타야 할 열차 시간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다음 정거장이 되는 이름 모를 마을에 내렸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특징이 있는 마을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마을이었다.

그저 수 많은 호숫가를 접하고 있는 작은 마을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을을 일주하는데 약 30분이 걸렸다. 마을 꼭대기에 올라 호수도 눈에 담아보고,

애완동물과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마주치고,

아무런 관광할 장소도 없는 이 마을의 끝, 호숫가에 앉아

결국 루체른으로 향하는 배가 올 때 까지 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선착장에는 백조와 갈매기, 오리와 같은 많은 새들이 있었다.

스위스로 향하는 열차에서 우연히 친해지게 되어 루체른에서 함께 여행을 했던 분이 우연히 남은 빵조각이 조금 있었고

우리는 그걸로 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의외로 새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모이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 많은 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심지어는 손에 들고 있는 빵까지 뺏어가려고 내 손가락을 무는 백조도 있었다.


이 녀석이 문제의 그 백조.

어떻게 빵 한번 먹어보겠다고 내 손을 향해 머리를 쭉 뽑아올리는 모습을 담았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은 나빴다. 건방진 녀석!!


한적하고 고요한 이 마을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호숫가의 물결을 바라보며

새들의 모이 먹는 모습도 구경하면서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 이렇게 고요한 한 순간이

내게 이토록 커다란 평화를 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삶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와 함께.


아마도 이 작은 마을에서의 한 시간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친구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유럽 여행을 모두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친구는 사실 속으로

이 마을을 떠나며 반드시 죽기 전에 그 마을에 다시 한 번 들르겠다는 맹세를 했더란다.

나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었다.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들르리라.



이 녀석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은 평생 마음 속에 간직하며,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꺼내어

마음 한 구석의 평화를 얻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뒤로 하고 증기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마음 가득히 평화를 담고 떠나간 마을.

언젠가 다시 돌아가,

지친 삶의 때를 벗기며

또 한 번 백조들과 실갱이도 벌이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인생은 그런 모습이었으면 싶다.



2008년 1월 10일

Photo by Tamuz



Nikon D50, 18-35mm 3.5-4.5
Minolta Dynax 7xi, 28-80mm 3.5-5.6

@스위스, 루체른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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